타인을 바라보기

우리는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 중에서 비교적 최근에 얻은 중요한 지식 중 하나는 “우리는 정말로 아는 것이 없다” 는 사실이다. 대부분 인간들은 자연과학적 지식에 대해서는 자명하고, 일상에서도 정확히 알 수 없어 상상력을 통해 근사밖에 하지 못하는 것들을 알고 있다고 착각 하며 살고 있다. 특히 물리적 실체가 없는 개념 상당수에 대해서 그러하다. 사실 과학적 지식이 아닌 경우에는 아는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알 수가 없는 것, 모른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도 많이 존재한다.

인간이 받아들이는 세상은 자신의 경험과 관측을 기초로 하여 재구성된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현실이 존재하지만 - 사실 이것도 부정하는게 현대 물리학이지만 -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많은 개인의 정신이 구축해낸 각자의 세상은 서로 의사소통이 될 정도의 공통점을 가질 뿐 그 정확한 모습은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진화 과정의 언젠가부터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간의 자아는 강력한 추상화 능력을 가졌다. 학습 능력 자체가 세상을 재구성해 파악하는 성질을 포함하지 않는가.

공통 부분에서 튀어나온 나머지 부분이 인간의 개성을 결정한다. 타인을 이해하는건 이 튀어나온 돌기의 모양을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추정하는 행위가 된다. 실재하는 세상을 매체로 하여 여러 사람들의 행동, 말 등이 서로에게 관측되며, 각자가 이 관측과 자신에게 쌓인 경험을 재료로 다른 사람의 모습을 근사 한다. 하지만 정확한 모습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두 사람 사이에는

A 의 세상 - A의 정신 - 실재하는 세상 - B의 정신 - B의 세상

이렇게 각자의 정신이 마치 공유기(당신 집에 있는 그거 맞다. NAT …)처럼 버티고 있어서 서로의 세상을 직접적으로 관측할 수도 없고, 관측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세상에 그 모습을 반영하는 순간 다시 해체-구성 프로세스를 거치며 정보의 손실이 일어나게 된다.

세상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관측되는 개성이 매우 비슷하거나, 그 형태가 서로에게 잘 들어맞는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 서로 잘 맞는 친구, 연인, 동료가 될 수 있다. 종종 소울메이트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역시 비슷한 케이스인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든 개성이 표출되며 만들어내는 현실 반영이 비슷하거나, 반대되거나, 잘 맞거나 등 의미있는 상관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면 스토리가 생긴다. 서로 밀어낼 수도, 당길 수도, 혹은 거리가 유지될 수도 있다.

이건 내 맘대로 생각한 인간이 타인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한 모델이다.

이 모델에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있는데, 첫 번째는 각자가 타인의 존재를 자신의 세상에 투영하는 행위가 자기 세상에 변화를 만든다는 점이다. 타인을 눈에 담는 것 만으로 나도 바뀔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은 관측된 세상을 바탕으로 자기 내면에 마련된 세상을 재구성하기 때문에 그 관측으로 인한 변화가 국지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쩌다 보면 길 가다 스쳐지나간 길냥이의 꼬리 흔들림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아무리 가까이서, 오랫동안, 세심하게 관찰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완전하게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어느 정도 근사는 할 수 있겠지만, 완전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실존하는 개인을 모종의 형태라고 비유를 했는데, 이 비유를 계속 사용해서 설명해보자면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상은 아주 많은 축이 있는 초고차원에 구성된 형태인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저(basis)의 집합 자체가 조금씩 다르다. X, Y, Z 축을 가진 3차원에 만들어진 토끼와 W, X, Y 축을 가진 3차원에 만들어진 호랑이는 서로를 만지는 것도 보는 것도 불완전하다. 서로가 토끼, 호랑이라는 것을 알아는 볼 수 있을까? 어떤 영화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내가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

어쨌거나 이 모델을 바탕으로 몇 가지 케이스를 설명해 보자면,

  • 사람 보는 눈이 있다 -> 기저의 집합이 매우 커서 다른 사람의 세상에서 비교적 많은 축을 가져와 근사할 수 있다
  • 포용력이 있다 -> 다른 사람을 관찰하며 세상에 자신을 내놓는 형태를 조절한다
  • 덕후다 -> 특정 기저들이 매우 큰 가중치를 갖는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자기 세상을 실재하는 세상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새겨넣을 수 있는데, 이 그 방법 중 하나이다. 물론, 디씨에 싸놓은 똥이라거나 세상 어딘가에 남아있는 흑역사 노트라던가 이런 것도 그러하다.

결론은, 우리는 서로를 알기 위해서 항상 노력해야 한다, 세상에 나를 최대한 잘 드러내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세상에 흔적을 남길 때에는 한번 쯤 생각을 해봐라, 뭐 이런 훈훈한 이야기다.


  • 자신만의 세상(현실?), 이라고 하니 학원도시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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