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를 쓰는 이유, 혹은 쓰지 않는 이유

위키를 사용해 컨텐츠를 정리하는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협업 플랫폼, 또 하나는 정보의 구조화, 마지막으로 쉬운 접근이다.

1. 협업 플랫폼:

많은 사람들이 공헌하여 위키피디아, 엔하위키(리그베다위키?) 등의 거대 위키를 만들어가고 있다. 확실히 나로서는 익명의 많은 사람들이 협업하기 위한 더 나은 플랫폼을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수많은 익명의 기여자들이 아니라 서로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협업하는 데에는 여러 면에서 - 편집기, 충돌 문제, 실시간성 등 - 더 나은 플랫폼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타이트한 공동 작업은 경우 GoogleDocs를 통하거나, 보다 느슨한 협업은 에버노트/원노트 등의 공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냥 제로보드 같은 게시판에서 공동 작업을 하는 것도 소규모 팀에선 위키보다 편할 수 있다. 찾아보면 내가 모르는 더 쩌는 도구들도 있을것 같다.

2. 정보의 구조화

협업 플랫폼으로서 더 나은 대안이 존재함에도 위키를 택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것이 이유가 될 수 있다. 위키가 다른 정보 저장(노출?) 방식과 가장 차이나는 점은 페이지와 하이퍼링크로 물리적인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블로그 같은 경우는 시간 순서(로그니까)대로 컨텐츠가 나열되고, 노트같은 경우도 기본적으로 시간 순서, 혹은 태그나 검색어 저장 등을 통해 뷰를 만들 수도있다. 하지만 위키같은 계층 구조를 만들어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위키 역시 시간 순서로 뷰를 만들 수 있지만 특별한 때가 아니면 별 의미가 없다.

개인위키는 협업 플랫폼으로서의 장점에 관심이 없는 사례다. 일반적으로 블로그가 보다 만들기 쉽고, 관리하기도 쉬우며 컨텐츠를 작성하기도 쉽다. 굳이 위키라는 플랫폼을 택했다면 위키를 통한 정보의 계층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는 뜻이다.

3. 쉬운 접근

컨텐츠를 혼자서 만들고 혼자서 사용한다면 정보의 계층 구조를 굳이 만들 필요는 없다. 그냥 한 곳에 마구 쌓아놓고 검색 기능을 사용하면 된다. 최소한의 분류(기술/연예 혹은 직접 쓴글/스크랩의 구분, 회사일과 아닌것의 구분 등)만 해 놓고 검색이 가능한 상태가 되면 자기가 넣은 정보는 나중에 쉽게 다시 찾아낼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위키 형식으로 정보를 저장한다면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쉽게 내용을 뒤적일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다. 여기서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타인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몇년 후의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긴 하다.

위키의 가장 큰 장점이 구조화로 인해 접근이 쉬워진다는 것인데, 이게 반대로 가장 큰 단점이 되기도 한다. 컨텐츠를 넣으면서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를 한 번은 결정해야 하고, 이 후로 컨텐츠가 추가될때마다 전체 위키 구조를 신경써야 한다. 그래서 구조화하기 힘든 생각난 것을 끼적인 메모나, 스크랩을 모으는 등의 용도로는 적당하지 않다. 위키에 컨텐츠를 추가하는 것은(특히 개인위키) 매우 성가신 일이다.

내가 위키를 유지하던 걸 포기하고 2번에 언급한 에버노트/원노트에 모두 때려넣고 검색하기로 전향한 것은 그 안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공유할 생각(아마도 필요가)이 없기 때문이다. 공유하고 싶은 것만 이렇게 - 지금 이 블로그는 원노트 Journal 섹션의 발췌 공유이다 - 따로 공유한다. 내가 가진게 매우 가치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더 적극적으로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그렇게 공유할만한 것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면 위키질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만 멀거나 오지 않을 이야기 … 사실 대부분의 빡센 개인 위키 운영자들은 큰 뜻이 있기 전에 기본적으로 정리 덕후인게 크다고 본다.

개인 위키를 유지하며 내용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모든 용자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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