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킬찍기는 게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삶은 에너지의 충전/소모의 반복으로 구성된다. 우리 몸은 항상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고, 무슨 활동을 하는가에 따라서 소모량은 크게 늘어나거나 줄어들기도 한다. 이 에너지가 육체적인 것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흔히 볼 수 있는 게임에서의 HP, MP 의 이중 시스템이 현실을 비교적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육체적인 에너지 외에 정신적인 에너지도 충전/소모 사이클이 있다.

HP 가 떨어지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물리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잠을 자거나, 앉아서 휴식을 하거나, 몇몇 훌륭한 먹을거리를 섭취해서 에너지의 기초 소모량보다 회복량이 많은 상태를 유지하면 HP 가 회복되어 다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MP 의 소모는 HP 보다는 알아채기가 힘들다. MP 는 공부를 한다거나, 신경쓰이는 귀찮은 일이 계속 머리 한켠에서 괴롭힌다거나 등의 정신적으로 불편한 상태에서 빠르게 떨어진다. MP 가 바닥난 상태가 되면 뭔가 하고 있지만 하고 있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린다. 밤샘 공부를 하고 있지만 뭘 했는지 모르겠다거나, 한참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하얀게 배경 까만게 글씨란거 외엔 기억이 안난다거나, 체력은 충분한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지박약 상태가 된다거나 하는게 MP 방전의 징후이다.

HP, MP 둘 다 레벨에 따른 최대치는 정해져 있고 회복에 시간과 자원이 들기 때문에 무한정 포션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보다 많은 일을 해내고 싶다면 전략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레벨을 높여서 HP, MP 최대치 및 회복률을 높이는 것. 두 번째는 작업의 숙련도를 높여서 같은 일에 대한 HP, MP 소모량을 줄이거나 효과를 높이는 것.

일단 두 번째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같은 레벨에 효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레벨을 빨리 올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스킬을 찍고 스킬트리 만들기는 게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몸의 각 부분에 대한 미세 컨트롤을 하지 않(못하)듯이, 좀 더 큰 단위에서도 자주 하는 많은 행동들을 스킬같은 느낌으로 추상화해버릴 수 있다. 이렇게 생성된 스킬같은 무엇인가는, 어느 정도 반복해서 사용하고 나면 정말로 스킬이 되어 버린다. 동작 방식을 의식하지 않고 뭔가 할 수 있게 되었다면 정식 스킬로 시스템에 등록된 것. 이제 스킬 포인트를 쌓아 스킬랭크를 올려서 요구 HP, MP 량을 줄이거나 스킬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다.

한손 직검을 들고 적을 계속 물리치면 한손 직검의 스킬포인트가 쌓인다. Matlab에서 작업을 계속 하면 Matlab 스킬포인트가 쌓인다. Java를 계속 쓰다 보면 JVM Internal 스킬이 열린다. 10년간 열린 스킬을 수련하지 않으면 10년차의 그저그런 개발자가 되는 것이고, 상위 스킬이 열릴 때마다 빨리 찍어서 스킬트리를 훌륭하게 찍어내면 생산성 높은 개발자(에만 국한된건 아니지만)가 될 수 있다.

스킬트리다?

이렇게 쌓인 스킬셋은 그 자체로 평균적인 HP, MP 소비량을 줄이거나 사용 효율을 늘려주는 이외에도 매크로를 만들기 위한 빌딩블럭으로도 동작한다. Routine 이라는 일종의 매크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단위들이 적절히 높은 수준의 다른 매크로나 스킬이어야 한다.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동작으로는 매크로를 만들 수 없다. 매크로를 사용하면 동작 사이의 연결에 낭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항상 HP, MP 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기초 대사량?)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 역시 중요하다.

삶이 게임과 다른 점은, 스킬셋이 미리 정해진 것이 없고 누구나 무엇이든 자유롭게 자신의 스킬을 생성하고 스킬트리를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등록하고 나면 매크로 생성도 자유. 하지만 매크로에 한번에 등록할 수 있는 엔트리 개수는 아마도 레벨에 따라 다를거다.

우리는 레벨을 올리는 외에도, 목표로 하는 던전에서 가능한 높은 효율을 보일 수 있는 스킬트리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가야할 던전 종류에 따라 무슨 스킬을 찍어야 하는지, 어떤 스킬트리를 만드는게 좋은지, 어떻게 스킬포인트를 잘 쌓을 수 있는지, 괜찮은 사냥터는 어디인지, 필드보스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 등을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해줄 수 있는 사람이 멘토라고 불린다.


내가 지금까지 찍어온 스킬트리는 무엇인가, 레벨은 얼마인가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핸 스탯창을 이력서라고 한다. 요새 이런 스탯창을 공유하는 소셜 서비스가 있다던데, 링크드인이라던가 뭐라던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