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 만드는 사회

어제 포스팅에 대해 “통계는 약장수” 라는 언급을 한 친구가 있었다. 통계로 장난을 치거나 함정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자주 듣는데,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순간 의문이 생겼다. 왜 이런 일이 생기나?

일단 검색하다 나온 관련 책들은 질렀고, 앞으로 차차 읽어가야겠지만 …

요약하면 매일같이 쏟아져나오는 정보, 특히 거짓이 들어갈 여지가 없고 객관적이어야 할 것 같은 숫자들이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안 그럴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현혹되기 쉽다. 꼭 통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신문 기사, 언론 보도, 모종의 연구 결과들이 한치 거짓도 없더라도 까이는 일들이 많다. 통계가 그럴싸해 보여서 문제가 도드라지는 것이지, 사실 모든 형태의 정보 생성 및 전달 자체에 문제가 있다. 팩트만으로는 부족한가? 부족하다. 이야기에 거짓이 없는 것보다 사실이 없는게 문제다.

정보 전달에 중요한 사실들이 빠지는건 1. 근본적인 정보의 부족, 2. 있는 정보도 다 전달하지 못함, 3. 전달한 정보를 다 받아들이지도 못함,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정보의 손실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건,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정보량으로 진실을 압축해야 하는데 여기서 취사선택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을 다르게 말하게 된다. 또한, 똑같이 정리된 정보를 접하더라도 접근할 수 없거나 중간에 잘려나간 정보를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정보의 편집이 사람의 손(그러니까 의도)를 타지 않고 완전히 기계적으로 된다고 해도 문제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만약 내가 어떤 사안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 처리 능력이 있다면 사건에 대해 완전히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 지만, 말 그대로 전지전능해야 하는데 이건 불가능하다. 인간은 물리적인 한계로 인하여 완벽하게 객관적인 상황 파악을 할 수 없다. 두 사람 이상이 관심을 가지는 사안이라면, 관련자 그 누구도 완벽한 정보를 가질 수 없다. 상황 파악을 위해서는 여럿이 각자가 가진 조각들을 내보이고 맞춰보며 저마다 상황의 재구성 및 해석을 해야 한다. 완벽히 객관적인 것은 일단 불가능.

그렇다고 객관적일 수 없으니 객관성을 마냥 포기할 수만은 없다. 개인적으로 객관성의 추구 자체가 중요하며, 여기에 정보의 소비자에게 유리한 내용을 빠뜨리지 않는것이 핵심이 아닐까 한다. 문제는 분업화된 현대 사회에서 정보 제공자와 정보 소비자는 독립되어 있고, 그 둘의 이해관계 역시 제멋대로라는 점이다. 정보 소비자에게 유리한 내용이 정보 제공자에게 불리하다면? … … 따라서 우리는 항상 정보 제공자의 의도를 고려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정보 제공자가 만든 편향을 상쇄할 수 있는 반대 편향을 주어야 한다. 이걸 못하면 정보 제공자의 의도했건 안했건 편향을 따라가게 된다. 이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쪽의 부담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정보의 생성, 취합, 정리 쪽으로 어느 정도의 부담을 넘길 수 있으면 좋겠다. 데이터 분석을 업으로 하는 여러 기업에서 이에 기계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신문 기사를 로봇이 쓰는 것도 먼 이야기는 아니다… http://slownews.kr/26657, http://slownews.kr/26762 무인 자동차가 완벽하진 않더라도 내 생각에는 인간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것 처럼, 적어도 몇몇 미친 언론들보다는 로봇이 만드는 기사가 좀 더 의도적 편향은 적지 않을까 한다. 혹은, 같은 사안에 대해 각기 의도를 가지고 생성된 기사들을 모아서 다양한 의도를 펼쳐서 보여줄 수도 있다.

여튼 정신 똑바로 안차리면 코 베이는 세상이다.


신문 기사 읽는 법, 통계로 거짓말하기 등 관련된 책을 좀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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